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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흥행 영화 속 여성캐릭터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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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소위, 천만관객을 돌파한다는 최신 흥행 영화를 즐겨 보시나요? 혹시 영화를 볼 때, 영화의 내용 뿐 아니라 등장인물도 유심히 살펴보신 적이 있나요? 영화를 보면서, 그 영화에 여성 캐릭터들이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세어보신 적은 드물 것이라 생각됩니다.

 

‘벡델 테스트(Bachdel Rule)’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이 테스트는 미국의 만화가 앨리스 벡델이 1985년에 연재한 만화에서 비롯, 해외 비평가 사이에는 이미 흔히 사용되는 성 평등 평가 방식입니다.

 

2015년 흥행에 성공한 한국 영화 3편을 분석하며, 벡델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만약 이 테스트에서 통과하게 된다면 우리나라 2015년 흥행 영화 3편은 영화에서의 성 평등 기준을 통과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벡델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한 3가지 조건

벡델 테스트가 실린 원작 만화를 통해서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한 조건 3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한 조건 3가지>
① 영화에서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두 명 이상인가?
② 이 여성들끼리 한번이라도 대화를 하는가?
③ 그 대화 속에 남자 주인공에 관한 것이 아닌 다른 주제의 내용이 있는가?

 

항목을 보고 설마 이것도 통과 못 하겠느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테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절대 만만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실 거에요.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2015년도 한국 영화 흥행작 3편을 하나하나 분석해보겠습니다. 과연 몇 작품이나 이 기준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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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한국 영화 관객 수 기준 최대 흥행작 3편 Ⓒ영화진흥위원회

 

관객 수를 기준으로 하여,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작년에 흥행 한 우리나라 영화를 캡쳐한 화면입니다. 보시다시피 베테랑, 암살, 국제시장, 이 세 편의 영화가 관객 수 기준 최대 흥행작으로 선정되었는데요. 이 세 편의 영화가 벡델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1.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두 명 이상인가? : ‘베테랑’, ‘암살’, ‘국제시장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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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미스봉(좌)과 서도철의 아내 주연(우) Ⓒ네이버 영화 ‘베테랑’

 

1위를 기록한 영화 ‘베테랑’에서는 미스봉과 주연이라는 두 여성 캐릭터가 나옵니다. 영화 설명에는 두 캐릭터 모두 조연으로 나오지만, 일단 이름을 가진 캐릭터이니 조건을 통과한 것으로 할 수 있겠죠? 미스봉은 영화에서 꾀나 비중 있는 인물이었음에도 그녀의 풀네임이 생각이 안 난다는 게 흠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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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상단부터 영화‘암살’의 독립운동가 안옥윤, 독립운동가의 조력인 아네모네 마담, 안옥윤의 자매이자 친일파 강인국의 딸 미츠코, 안옥윤 자매의 엄마 안성심 Ⓒ 네이버 영화검색 ‘암살’

 

다음으로 2위를 기록한 영화 ‘암살’을 살펴보시겠습니다. 안옥윤, 아네모네 마담, 미츠코, 안성심 정도의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하네요. 미츠코와 안성심은 짧은 시간 등장하는 조연이지만 아네모네 마담은 영화 내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맡은 중요한 인물입니다. 안옥윤은 주연이고요. 이름을 가진 세 명의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했으니, 영화 ‘암살’도 벡델 테스트의 1차 조건에 잘 부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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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제시장’의 여성 캐릭터들. 왼쪽 사진 – 왼쪽부터 덕수모, 덕수처 영자, 덕수 여동생 말순, 덕수고모. / 오른쪽 사진 – 잃어버린 덕수의 막내 동생 끝순이. Ⓒ 네이버 영화검색 ‘국제시장’

 

위 사진에 영화‘국제시장’의 주요 여성 캐릭터가 총집합 해 있습니다. 그러나 캐릭터의 이름이 다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주인공의 아내인 영자와 주인공의 동생인 끝순, 막순이 정도만 이름이 설정되어 있으며, 막내 동생인 끝순이는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마지막에 잠깐 등장하는 정도입니다. 그래도 세 명의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등장했으니 국제시장도 벡델 테스트의 1차 조건에 합격하네요.

 

조건2. 이 여성끼리 한 번이라도 대화를 하는가? : ‘암살만 통과!

벡델 테스트의 두 번째 조건인 ‘이 여성끼리 한 번이라도 대화를 하는가?’입니다.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2015년 흥행 영화 1,2,3위를 순서대로 분석해보겠습니다. 우선, 흥행 1위를 기록한 영화 ‘베테랑’에서는 여성 캐릭터들이 서로 대화를 하는 장면은 러닝타임 123분 동안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바로, 영화 ‘암살’을 살펴볼까요?

 

영화 ‘암살’에서는 안옥윤과 미츠코, 서로 자매관계인 두 여성 캐릭터가 가족을 소재로 한 대화를 전개합니다. 또한 안옥윤과 아네모네 마담이 독립운동과 관계된 이야기를 계속 풀어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 둘만의 대화라기보다는 어떠한 일을 모의하기 위해 여럿이서 주고받은 이야기였기 때문에 두 번째 조건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안옥윤과 미츠코가 나눈 단 한번 뿐인 대화였지만, 어쨌든 벡델 테스트의 2차 조건인 ‘이 여성끼리 한 번이라도 대화를 하는가?’에 통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5년 흥행 3위를 기록한 영화 ‘국제시장’은 어떨까요? 조건1에 부합한 여성 캐릭터끼리 영화에 의미를 부여하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영화의 영어 제목이 ‘Ode to My Father’인 만큼, 이 이야기는 아버지의 인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래서인지 여성 캐릭터끼리의 대화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참고로 영화 ‘국제시장’의 러닝타임은 126분이었습니다.

 

조건3. 그 대화 속에 남자 주인공에 대한 것이 아닌 다른 주제의 내용이 있는가?

: 영화 암살통과

 

영화 ‘베테랑’과 ‘국제시장’의 경우에는 여성 캐릭터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없으므로, 세 번째 조건을 테스트 할 수 있는 게 영화 ‘암살’밖에 없네요! 암살의 주요 대화 장면을 자세히 한 번 볼까요?

 

미츠코 : 엄마 사진 맞나 봐봐. 안옥윤 : 엄마 맞아. 왼쪽에. 미츠코 : 오른쪽이 엄만데. 왼쪽이면 유모고. 안옥윤 : 오른쪽이 엄마라고? 당혹스러운 옥윤, 다시 사진을 본다 미츠코 : 아무것도 몰랐구나? 그러니까 아빠를 쏠려고 했지. 나랑 집에 같이 가자. 아빠가 다 해결해 줄거야. 아빠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너무 좋다. 언니를 만나서 정말 좋다. 안옥윤 : 내가 매국노 집에 왜 가? 미츠코 : 매국노? 여기서는 다 그냥 그렇게 살아. 물론 나도 독립 운동하는 사람들 존경해. 근데 너는 안했으면 좋겠어. 옥윤 : 혼자 온 거 맞아? 바깥에서 들리는 기척에, 본능적으로 칼을 드는 옥윤. 미츠코가 칼을 뺏는다. 미츠코 : 내가 해결할게. 나 카와구치 집안 며느리 될 사람이야. 니가 보면 매국노지만.

▲ 영화 ‘암살’ 대본 중에서, 안옥윤과 미츠코의 대화

 

영화 ‘암살’은 일제강점기 시절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군들이 투쟁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따라서 주요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가 거의 다 독립투쟁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그 중에서도 주요 여성 캐릭터들은 독립투사(남자)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눕니다. 남자 독립투사 캐릭터를 뺀 대화 내용을 살펴보니, 안옥윤과 미츠코가 가족에 대해 이야기 한 부분이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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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한국 흥행영화 3편의 벡텔 테스트 결과

 

우리 사회에 남성중심적 사고가 깊이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닐까?  

결론적으로 보면, 2015년 한국 흥행 영화 3편 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암살’뿐입니다. 그렇다고 ‘암살’을 제외한 나머지 두편의 영화가 작품성이 없다던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번 분석이, 어쩌면 막연하게 남성중심적 사고를 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모든 영화에서 남녀의 비율이 다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영화의 특징에 따라 어떤 영화는 남성 캐릭터의 수가 더 많을 수도, 어떤 영화에서는 여성 캐릭터의 수가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또 단순히 남성, 여성 캐릭터 중에서 어떤 캐릭터의 수가 더 많느냐로 단순히 남녀 평등을 얘기할 수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테스트가 의미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대중문화가 남녀의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남성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남녀의 성역할이나 남성 중심의 고정관념이 더욱 고착화 되지 않으려면, 대중문화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선제적으로 캐릭터에 대한 보다 활발한 연구를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글 = 제8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김은기(대학부)

이 글은 블로그기자 개인의 의견이며, 법무부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