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은사제들’이 500만 관객을 넘었다고 합니다. 장르영화 치고는 대단한 흥행입니다. ‘검은사제들’은 뺑소니 교통사고 이후 의문의 증상에 시달리는 한 소녀를 구하려고 분투하는 두 신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주인공 김신부님이 뇌사자를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 법에서는 뇌사자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뇌사자도 일반 사람처럼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요?
뇌사상태는 어떤 상태일까?
먼저 ‘뇌사자’는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얼핏 비슷해서 혼동돼 쓰이는 용어로 ‘식물인간’이 있습니다. 식물인간은 의학적으로 대뇌 기능은 정지됐지만 뇌의 남은 일부 기능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호흡도 하고 순환기능이 유지되죠. 그리고 식물인간인 환자는 눈을 깜박이거나, 몸을 움찔하는 등 단순한 반사작용도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뇌사자는 앞서 식물인간 뇌에서 남은 일부마저도 불가능한 상태를 말합니다. 대뇌뿐만 아니라 소뇌와 뇌간 활동까지 멈춰 버린 것이죠. 그래서 뇌사자는 호흡기가 없으면 혼자서 호흡도 할 수 없고, 어떤 외부 자극에도 반응을 할 수 없습니다.
제4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5. “살아있는 사람”이란 사람 중에서 뇌사자를 제외한 사람을 말하고, “뇌사자”란 이 법에 따른 뇌사판정기준 및 뇌사판정절차에 따라 뇌 전체의 기능이 되살아날 수 없는 상태로 정지되었다고 판정된 사람을 말한다.
뇌사자는 의식도 없고, 감각적으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의학적으로는 죽은 사람으로 봅니다. 뇌사자는 연명치료를 통해 강제로 살아있게 할 뿐이지 사실상 일반인과 같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나라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서는 뇌사자를 죽은 사람으로 간주합니다. 뇌사자는 뇌 이외의 다른 장기가 제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할 경우 또 다른 생명을 구하기 위해 여지를 열어준 것입니다.
하지만 뇌사자가 장기를 이식한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생명활동을 중단하는 것입니다. 아무나 뇌사자로 판정될 수 있고, 어떤 뇌사자든지 장기 기능이 가능하다면 이를 악용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을 겁니다. 때문에 우리 법에서는 그 절차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을 뇌사로 판정하기 위해서는 전문의 2명이 포함된 약 6명의 뇌사판정위원회의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뇌사로 판정됐다 할지라도, 본인이 뇌사 전에 장기 적출에 반대의사를 명시했거나, 가족들이 반대한 경우는 이식이 불가능합니다.
제250조(살인, 존속살해) ①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제251조(영아살해)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뇌사자 상대의 범죄는 형법으로 판단
그런데 뇌사자를 죽은 사람으로 볼 수 있는 경우는 앞서의 장기이식법의 영역에서만 가능합니다. 장기이식과 상관없이 뇌사자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형법에서 판단을 합니다. 예를 들어 가족들이 힘들다는 이유로 뇌사자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적극적으로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형법에서는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어떻게 구분할까요? 형법에선 사람을 시작과 끝으로 나누어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먼저 언제부터 사람인가에 대해선 산모가 규칙적인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사람으로 봅니다. 정확히 형법에서는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분만이 개시된 임산부의 태아를 죽일 경우 형법 제251조의 영아 살인죄로 처벌을 받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생명을 인위적으로 유지시키는 게 무의미한 한 뇌사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뇌사자의 가족들은 더 이상 연명치료를 하길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하는 것 역시 원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떡해야 하는 것일까요? 뇌사자의 연명치료 중단은 오로지 장기이식법에서만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들은 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 계속 잠자코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관련된 논의가 소극적 안락사, 즉 존엄사 이야기입니다. 소극적 안락사는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영양공급이나 약물 투여 등을 중단함으로써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이고, 적극적 안락사는 환자, 혹은 멀쩡한 이에게도 약물 투여 등을 함으로써 죽음을 앞당기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적극적 안락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 대법원에서 2009년, 엄격한 요건 하에 허용해야 한다고 판결을 했습니다. 앞서 사례처럼 강제적인 연명이 의미가 없고,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도록 존엄성을 지켜줘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영화에서 뇌사자를 죽인 김신부님은 어떻게 될까요? 김신부님이 뇌사자를 대상으로 부마의식을 하고, 결국 뇌사자를 진짜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행위가 진짜 현실이었다면 형법에 의해 판단을 받게 될 것이고, 살인죄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것이죠.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선 뇌사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의학, 장기이식법 혹은 형법 등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신중해합니다. 누구도 함부로 개인의 생명을 물리적으로 정지시킬 권리는 없으며, 누군가가 함부로 개인의 ‘죽음’을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글 = 제7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박현익(대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