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임대한 원룸, 딴 사람에게 재 임대 했더니, 이런 일이!!
서울 A 대학로 주변에서 원룸 생활을 하고 있던 대학생 갑순이는 방학을 맞아 2달간 유럽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원룸 집주인(임대인)과의 임대차 계약은 아직 반년이 남은 상태. 갑순이(임차인)는 집을 비운 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 원룸에 월세 50만원을 2달 동안 꼬박꼬박 주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아니 이대로 100만원을 날려야 돼?” 억울한 생각에 갑순이는 인터넷 복덕방 사이트에 자신의 방을 내놓기로 합니다.
“두 달만 사실 분 찾아요, 보증금x. 월40. 기본적인 생필품 다 마련돼 있고요, A대학 걸어서 5분 거리, B역도 바로 옆이라 역세권입니다.”
다행히 갑순이 집에 두 달 간 살게 될 새로운 세입자 을동이를 금방 구했습니다. 갑순이는 오히려 80만원을 벌었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두 달 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갑순이는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갑순이 집 화장실 변기는 막힌 채 온 집안엔 악취가 진동하고, 하얬던 벽지는 새까맣게 그을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뭔가 허전한 느낌에 주위를 자세히 관찰해보니 원룸 세입 당시 비치돼 있던 냉장고도 사라져 보이질 않습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확인 후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뚜. 뚜. 뚜. 뚜. 뚜…’
을동이는 번호를 바꿨는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입금돼야 했던 월세도 처음 한 번만 들어왔고 남은 40만원은 한 달이 지났는데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기존에, 즉 여행을 가기 전, 갑순이가 원룸에 살도록 한 계약을 임대차 계약이라고 합니다. 집을 빌려준 집주인은 임대인, 집을 빌려 쓴 갑순이는 임차인입니다. 이후, 갑순이가 여행을 간 동안 을동이에게 집을 빌려준 계약을 전대차 계약이라고 합니다. ‘재임대’, 혹은 ‘전전세’라고도 합니다. 이 때 갑순이는 전대차 계약에서 전대인, 을동이는 전차인이라고 합니다.
제629조 ⓵ 임차인은 임대인의 동의 없이 그 권리를 양도하거나 임차물을 전대하지 못한다.
⓶ 임차인이 전항의 규정에 위반한 때에는 인대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제630조 ⓵ 임차인이 임대인의 동의를 얻어 임차물을 전대할 때에는 전차인은 직접 임대인에 대하여 의무를 부담한다. 이 경우에 전차인은 전대인에 대한 차임의 지급으로써 임대인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전대차 계약은 반드시 집주인의 동의를 얻고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약 임대인(집주인)의 동의 없이 전대차 계약이 이루어지고, 이후에 임대인이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민법 제629조 제1항, 제2항에 따라 관련된 계약을 모두 해지할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1차적으로 전대차 계약은 앞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돼 전차인은 당장 집을 비워야 하고, 2차적으로 임대차 계약 역시 효력을 상실하게 돼 임차인도 집을 비우라면 비워야 합니다. 쉽게 말해 갑순이나 을동이나 앞으로 당장 살 집을 구하기 전까지 길바닥에 나앉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계약이 끝이니, 당연히 집주인과 갑순이 사이의 보증금은 이제 주택임대차계약의 보호를 받는 보증금이 아닌 단순 채권·채무의 대상으로 남을 뿐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앞서 사례에서 전대차 계약은 동의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만약 정상적인 전대차 계약이었다면 민법 제630조 제1항에 따라 전차인(을동이)이 임대인(집주인)에게 기물 파손이나 분실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의가 없는 계약이므로 모든 책임에 대해 당장은 임차인인 갑순이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막힌 변기도 뚫어야 하고, 오염된 벽지도 새로 발라야 하고, 잃어버린 냉장고를 찾든지 아니면 새로 냉장고를 임대인에게 사줘야 할 것입니다. 100만원 아까워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리게 됐습니다.
만약 갑순이가 을동이를 찾았다 해도 여기서 (냉장고)절도죄에 해당하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어떤 처벌도 불가능합니다. 오로지 계약에 관한 민사상 책임만 물을 수 있을 뿐이죠.
그렇다면 전차인이 받게 되는 불이익은 없을까요?
어떻게 보면 임차인보다 전차인에게 더 위험한 계약이 전대차 계약입니다. 위 사례의 경우는 극단적인 전차인(을동이)을 예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주위에 전대차계약은 대개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에 여유가 있다면 정상적인 임대차 계약을 했을 것이고, 더 있다면 직접 자기 집을 사서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은 계약서를 자세히 살피지 않고 임대차 계약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서야 전대차 계약임을 알고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전차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못 받는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임대차 계약을 맺고 세를 들어 사는 입주자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의해 ‘대항력’과 ‘최우선변제권’이라는 힘을 같습니다. 이는 집주인인 임대인이 마음대로 집을 팔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자 해도, 임차인의 권리는 임대인의 권리보다 우선하며 임대인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더불어 나중에 임대인이 큰 빚을 져 부도가 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해도 다른 채권자들 중에서도 우선해서 변제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됩니다. 즉 임차인의 권리와 보증금은 누구보다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하게 보호받는 것입니다. 또한 임차인은 기본적으로 2년이란 기간을 법으로 보장받습니다. 일방적으로 2년 미만의 계약을 억지로 하게 됐더라도 계약 내용과 상관없이 임차인은 2년을 살 수 있습니다.
전대차와 임대차는 엄연히 다른 개념입니다. 따라서 전대차로 들어간 전차인은 2년 살기도 전에 쫓겨나도 구제받기 힘들고, 혹여 보증금도 맡겼을 경우 송두리 채 잃어버릴 가능성도 높습니다. 앞서 민법 제630조 제1항의 두 번째 문장 ‘이 경우에 전차인은 전대인에 대한 차임의 지급으로써 임대인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를 의미합니다. 정상적인 전대차 계약을 했을 지라도 임대차가 아니므로 다달이 돈을 지급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전대차 계약을 하지 않는 것!
결론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되도록 임대차 계약을 하고 전대차 계약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셔서 제목과 내용에 혹시라도 ‘임대차’가 아닌 ‘전대차’란 용어가 쓰여 있는지 검토해야 합니다. 더불어 등기와 비교해 등기에 기명된 집주인과 계약 상대방이 동일한지 따져야 합니다. 계약 당사자인 ‘나’도 모르는 집주인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은 임대차 계약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지막으로 불가피하게 전대차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면 꼭 두 가지 서류를 챙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는 전대차 계약서이고 다른 하나는 전대차 동의서입니다. 이 동의는 계약 시기와 상관없이 아무 때나 받아도 되고 명시적 또는 묵시적인 방식이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관련해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는 임차인과 전차인이 ‘동의 받은 전대차 계약’임을 입증해야 합니다. 따라서 사전에 미리 받고, 확실하게 명시적인 방법으로 증거를 남기시는 게 좋습니다.
안정적인 보금자리는 몸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언제 갑자기 잠 잘 공간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사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이 기사를 읽으시고 전대차 계약이 무엇인지, 어떤 걸 유의해야 하는지에 대해 꼭 아시고 피해 받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글 = 제7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박현익(대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