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의 주인은 누구?
구불구불한 골목길, 주택 및 상가가 밀집된 1차선 도로, 학생들이 많이 걷는 대학캠퍼스⋯⋯. 모두 보행자들의 안전이 우선시 되어야 할 곳입니다. 하지만 이런 공간에서 쌩쌩 달리는 차들을 보신 적 많으시죠? 또한, 차가 오는데도 아슬아슬하게 차 사이를 비켜가는 보행자도 있습니다. 서로 ‘먼저’라고 우기는 듯한 이런 모습! 과연, 집 앞 골목길의 주인은 운전자인 걸까요, 보행자인 걸까요?
▲ 대부분의 골목길은 이렇듯 인도와 차도의 구분 없이 위험하게 되어있다.
이런 곳은 횡단보도나 신호등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는 경우가 많고, 좁은 길의 특성상 사각지대 또한 많아 교통사고 위험이 굉장히 큽니다. 실제 서울시통계연보에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조사한 자료를 보면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의 66.4%가 폭 13m 미만의 도로에서 발생하였다고 하니, 좁은 길에서 보행자의 안전은 사실상 지켜지지 않는다고도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골목에서의 교통사고가 빈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와 관련해선 『도로교통법』과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12조(어린이 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
① 시장 등은 교통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시설의 주변도로 가운데 일정 구간을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자동차등의 통행속도를 시속 30km/h 이내로 제한할 수 있다.
제19조(자동차등의 속도)
① 법 제17조제1항에 따른 자동차등의 운행속도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일반도로(고속도로 및 자동차전용도로 외의 모든 도로를 말한다)에서는 매시 60킬로미터 이내. 다만, 편도 2차로 이상의 도로에서는 매시 80킬로미터 이내.
『도로교통법』은 어린이 보호구역을 정하여 자동차의 속도를 30km/h 내외로 지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시행규칙에서는 고속도로 및 자동차전용도로 이외의 모든 일반 도로에서는 60km/h로, 편도 2차선 이상의 도로에서는 80km/h 이내로 주행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집 앞의 골목에서 자동차가 60km/h로 달리는 게 법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60km/h는 생각보다 아주 빠른 속도입니다. 아래 실험 결과를 한 번 보실까요?
▲ 어린이보호구역을 제외한 도로는 대부분 시속 60km이하로 제한속도가 정해져 있다.
2012년에 교통안전공단에서 ‘차대 보행자 충돌시험’을 진행했는데요. 인체 모형과 시속 60km/h로 달리는 자동차를 추돌하였더니, 인체모형이 심하게 훼손되었으며, 실제 보행자가 머리에 중상을 입을 가능성이 99%이상이었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또한 시속 30km/h로 달리는 차와 충돌하였을 경우에는 17%, 40km/h로 달리는 차와 충돌하였을 경우에는 29%정도로 중상을 입을 가능성이 측정되었다고 합니다.
골목에서의 교통사고 위험이 큰 만큼, 행정적 차원에서도 우리나라 골목길 제한속도를 유동성 있게 조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더불어, 골목길에서는 방어운전, 방어보행을 생활화 하는 것이 중요할 듯합니다.
한편 이러한 차량 제한 속도와 관련한 문제점은 대학캠퍼스 내에서도 존재합니다. 지난 2011년에는 고려대학교의 한 학생이 셔틀버스에 치여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이는 대학 캠퍼스가 결코 교통사고 안전지대가 아님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 경희대 캠퍼스 내 제한속도 표시
각 대학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캠퍼스 내 제한 속도를 표시하여 학생 및 보행자를 보호하는 규정을 내놓고 있는데요, 캠퍼스 등의 학내 도로는 『도로교통법』에서 제시한 ‘불특정 다수’가 통행하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법으로 속도 등을 강제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도로”란 다음 각 목에 해당하는 곳을 말한다.
라. 그 밖에 현실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 또는 차마(車馬)가 통행할 수 있도록 공개된 장소로서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장소
『도로교통법』에 의하면 대학 캠퍼스는 도로 외 구역이 됩니다. 따라서 차량 속도 제한 및 제재에 있어 그 강제성이 없게 되고 그에 따라 많은 차량들이 캠퍼스 내에서 과속을 하는 등 학생 및 보행자들의 안전이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 질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말이 됩니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시속 20km에서 30km의 제한속도를 자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그것이 지켜지지 않더라도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란 어려운 실정이죠.
보행자가 많이 다니는 장소에서의 차량 제한 속도가 적절히 갖춰지지 않으면 자동차는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골목과 캠퍼스 등에서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보다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적용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글 = 제7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김지호(대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