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장가는 마블 코믹스 영웅들의 잔치였는데요. 3월에는 ‘캡틴 아메리카’, 4월에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가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웅들의 위력 속에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작지만 큰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영화 <한공주>입니다.
▶ 이미지 : 한공주 공식포스터
개봉 9일 만에 독립영화 최단 기록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10만 명이 넘는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였고,
개봉 11일 만에 14만 관객을 넘어섰습니다.
1만 명의 관객만 들어도 대박이라는 독립영화로는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한공주>는 한국에서보다 외국에서 먼저 주목을 받은 영화입니다.
13회 마라케시 국제영화제, 43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16회 도빌 아시아 영화제 등 국내 개봉 전부터
국제영화제에서 9관왕을 달성했으니 말입니다.
<한공주>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이 모티브로 한 영화인데요.
2004년 1월 중반부터 2004년 11월 말까지 밀양시의 고등학생 44명에 의해 울산광역시의 중학생 자매와 그들의 고종사촌인 창원시 고등학생 그리고 창원시 여중생, 여고생 2명 등을 성폭행, 구타, 공갈협박, 금품갈취해온 강도, 강간, 폭력 사건.
-채팅으로 6개월가량 만난 울산시 여중생을 밀양으로 불러내 쇠파이프로 기절시킨 뒤 한 여인숙에서 12명의 고등학생이 성폭행하고 카메라, 캠코더로 찍어 알리지 못하도록 협박했다. 피해자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1년 가까이 집단 윤간 당했고, 자살을 시도하면서 어머니에 의해 경찰에 신고 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한공주>는 실화 사건에 모티브를 두고 사건 자체를 조명해 관객들의 분노와 공분을 일으키는
다른 사회고발 영화와는 조금 다릅니다.
<한공주>는 사건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사건을 겪은 소녀의 후일을 그리고 있는데요.
‘가해자들이 어떠한 상상 못할 잘못을 저질렀다’를 꼬집는 영화가 아니라
지극히 피해자 ‘한공주’의 시선으로 자신의 지독한 성장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미지 : 영화 ‘한공주’ 예고편 화면 캡쳐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영화가 시작하면서 나오는 첫 대사처럼 고등학생들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이지만 친구가 자살하면서, 억울하지만 경찰조사를 받아야 하고 전학을 가게 됩니다.
▶이미지 : 영화 ‘한공주’ 화면캡쳐
정신적 트라우마 치료를 걱정해주는 사람 하나 없고,
병원에서 여선생님을 요청했지만 남자의사에게 염증치료를 받는 장면에서도
공주가 범죄피해자로 따뜻한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잊게 만듭니다.
▶이미지 : 영화 ‘한공주’ 예고편 화면캡쳐
하지만 공주는 덤덤하고 조용하게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3년 만에 만났지만 자기 살기 바쁜 엄마, 피해 합의서에 사인하게 해서 피해금을 챙기는 아버지,
공주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이는 하나도 없지만요.
새 학교에서 만나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은희에게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되지만,
가해자 학부모들이 수업중인 교실로 찾아와 쑥대밭을 만들면서 학교에서도 쫓겨나고 맙니다.
▶이미지 : 영화 ‘한공주’ 예고편 화면캡쳐
공주의 성폭행동영상을 본 은희와 친구들 역시 공주를 외면하면서 그녀는 철저히 혼자가 됩니다.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은 영화에 대한 호불호에 앞서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해진다는 공통된 후기를 쏟아내는데요. 피해자이지만 따뜻한 도움은 커녕
오히려 도망가야만 하는 한공주의 주변 상황을 보며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영화 속 한공주처럼 현실 속에서도 범죄피해자와 가족들이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법무부는 범죄피해자가 범죄로 인한 피해를 보상받고 상처를 치유하여 일상생활로 신속히 복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강화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이나 자기표현이 어려운 성폭력 피해아동·장애인에 대해 숙련된 전문 인력이
수사나 재판 과정에 함께 참여해 의사소통을 중개, 보조함으로써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하고
사건의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한 ‘진술조력인제도’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미지 : 영화 ‘한공주’ 예고편 화면캡쳐
영화 <한공주>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 피해자임에도 도망 다녀야만 했던 소녀를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못하고
밀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모습이 우리 사회의 모습을 날카롭게 파고든 장면이며,
나 또한 ‘간접적 가해자이지는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주변인들의 차가운 시선일 테니까요.
더 이상은 외로운 <한공주>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